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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평, 안 좋은 평, 대충 들으면서 어쨌든 보긴 봐야겠다 생각하고 늦게나마 보고 왔는데 나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나쁜 평들에도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개연성 떨어지는 부분도 많고, 생략도 많고, 대놓고 멋짐 폭발하면서 이래도 안 멋지냐 하는 것도 그렇고. 근데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고 왜 그랬는지 알겠고 그 의도가 납득이 가서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만주벌판에서 노숙하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을 안옥윤과, 도쿄에서 백화점 쇼핑하며 잘먹고 잘산 귀족(작위는 끝내 받지 못했지만 ㅋ) 아가씨 미츠코가 아무리 쌍동이여도 어떻게 그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피부톤부터 다를 게 당연하고, 일단 머리스타일부터 다르더만. 둘이 똑같이 생겼다는 믿어지지 않는 설정에 극 후반부의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
하와이 피스톨 캐릭터도 허술하긴 마찬가지. 비록 아버지를 죽인 트라우마라고 설명을 깔긴 했지만 하고 많은 폐인의 선택지 가운데 왜 하필이면 청부살인업자가 되었는지, 그것도 별 훈련도 못 받았을 귀족(여기야말로 진짜 친일귀족)의 자제가 무슨 타고난 재능으로 동아시아 최강(;;)의 킬러가 되어... 이것도 멋짐 반죽해주느라 둔 무리수겠고...
배금주의 속물 캐릭터였던 속사포나 영감이 어떤 계기도 생략된 채 엔딩에서 투사처럼 변신하는 것도, 안옥윤이 상관을 죽여야 했던 이유가 뭔지도, 죽은 줄 알았던 염석진의 부하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그와 안옥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도, 그 밖에도 기타등등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런 부분도 상당히 많았던 것 같고.
아, 또 가솔린 떨어진 건 강인국이 탄 차가 아니었는데 왜 강인국까지 주유소에 따라갔던 건가... 속사포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미츠코시 백화점 엘리베이터 천장에 어떻게 잠입했나... 염석진의 밀정 혐의는 그가 서울에 와서 상해 임정과 연락을 끊은 시점에 확정이 됐을 텐데 해방 이후 4년 동안 김구는 왜 염석진을 내비둔 건가... 증거와 혐의점이 확실한데(김구 사망이 49년 6월임. 염석진이 반민특위 재판을 받은 것도 49년으로 나오고).
지금 그냥 두서 없이 생각해도 빈곳도 많고, 너무 쓱쓱 지나가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도 많긴 할 텐데, 어쨌든 그게 그냥 다 영화의 구멍들이라고 해도 나는 이 영화가 좋다. 왜냐면, 최초로 독립운동가들을 '살아 있는 젊음, 청춘' '멋짐' '예쁨' '유머' 이런 현대적이고 '상업영화의 트렌디한 주인공' 이미지로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성공은 일제시대 경성의 퇴폐적이고 허무적인 근대만이 아니라, 만주에서 생사의 경계선 위를 달리며 '자아'를 실현해나갔던 독립투사들의 '근대'에도 '아름다움'을 접목시킬 수 있게 할 것이다. "당신은 왜 죽으면 안 돼는데?" 배경은 부엌이고 의상은 단아한 한복에 비녀로 쪽진 머리인데 입에는 담배를 물고 차갑게 남편을 쏘아보며 말하던 옥윤의 어머니를 진정한 '신여성'으로 호명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영화 그 자체보다 나는 그런 예감들이 더 두근거리고 설레였다. 거룩하지만 지지부진하고 궁상맞고 구태의연하고 생동감 없었던 '독립군'의 이미지에 아련하게 빛나는 청춘과 젊음, 사랑 같은 단어들을 붙여준 것이 너무 즐겁고 감사했다. 아주 전형적인 히어로물 같이 찍어줘서 더 좋았다. 이전까지 독립군은 우리의 '전형적인 히어로'가 되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멀고 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보다도 더 멀게 느껴졌던 만주의 젊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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