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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동영상을 다운받아서 보는 일이 거의 없다. IPTV에서 아무 때고 재생해서 TV쇼나 드라마는 봐도, 수고롭게 영상을 다운받아 재생기기에 옮겨담고 그걸 하나씩 하나씩 독파하는 일이 너무 귀찮기 때문이다. 이거 봐야지, 하고 가끔 다운받는 영상들은 있는데 그걸 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왕좌의 게임>은 굉장히 오랜만에 다운받아본 드라마다. 불펜에서 하도 얘기가 많이 나와서, 첨엔 '게임'이라고 해서 정말 게임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이게 미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시즌4까지 완결이 되어 있길래 토렌트 사이트에서 40편을 몽땅 다운받아 시즌 1의 1편부터 보기 시작했다. 나흘? 정도 만에 시즌 1을 다 봤다. 그 덕에 계속 새벽 2시경까지 잠도 자지 못했다.
좀 지나치게 잔인하고 쓸데없이 야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굉장히 재밌다. 판타지 설정이기는 해도 용이나 장벽, 장벽 너머 같은 몇몇 비현실적인 (극의 재미를 높여주는) 장치들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중세 사극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온갖 전형적인 인물들이 나오는데, 전형적인 인물이 전형적으로 된 이유는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재밌어 하는 캐릭터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대사들도 찰지고 화면도 멋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첨엔 그게 이 드라마 때문인지 몰랐는데, 소거법으로 찬찬히 찾아보니 이 드라마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지난 며칠 동안 스트레스 지수가 엄청나게 상승한 거다. 지금 마음에 걸리는 게 뭐지? 걱정되는 게 뭐지? 날 화나게 한 게 뭐가 있지? 꼽아봐도 별 특별한 게 없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세상이 걱정스럽고(;;) 뭔가 다 잘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먹구름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는데(내 무의식 속에 진정한 걱정거리가 따로 있는지도...) 지금으로선 이 드라마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광기, 지나친 욕망, 맹신, 증오, 배신... <왕좌의 게임>에는 좀 더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 재미는 있는데, 감정을 이입할 캐릭터도 없고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도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그보다 더 타인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버리고 가치없는 것을 숭배하고 정해진 파멸의 길을 미친듯이 질주한다. 그리고 천천히 겨울이 오고 있다.
뒷얘기가 무지 궁금하긴 한데, 시즌 2에 들어가기 전에 며칠 쉬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어젯밤 그 드라마 대신 <한국인의 밥상>을 보고 잤더니 오늘은 한결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김밥에게 문자로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사라져가는 풍천장어는 슬프지만, 그건 적어도 슬퍼할 수라도 있어서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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