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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숫자 드라마의 역습"이라고 표현한 걸 보고 '과연'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나인"과 "텐"의 애청자로서, 조금 공교롭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기에 연달은 숫자 두 개를 제목에 단 두 개의 드라마가 이토록 재밌다니!!!
월요일을 목전에 둔 일요일 밤이 흘러가고 있어도 '아 좀 있으면 <텐2>를 보겠구나, 생각하면 좀 견딜 만한 것처럼, 월요일과 화요일 밤에 머나먼 주말(ㅠㅠ)에 대한 까마득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게 바로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라는 TVN 드라마다.
사실 이진욱이라는 배우의 비쥬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허연 얼굴에 눈도 흐릿하고, 주로 남성성을 부각하는 역할을 자주 맡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어서 뭐 하나 내 '취향'인 게 없었다. 그냥 이진욱이 나온다고 하면 '에이 안 봐' 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비호감? 그래서 "나인"도 시작할 때는 본방사수 같은 거 없었다. 하도 재밌다고들 하니까 나중에 다운받아 보다가 꽂힌 경우.
그렇게 꽂혀서 보다 보니, 이진욱에 대한 비호감도 거의 없어졌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쫀쫀한 서사구조와 거듭된 반전의 퀄리티보다도, 첫 번째 장점은 남자 주인공 박선우의 캐릭터 자체였기 때문. 잘생긴 거 중요하고, 똑똑한 것도 중요한데, 내가 정말 어떤 캐릭터를 좋아할 때 훅~ 빠지는 포인트는 "공정함"이다. 박선우는 정말 근래 보기 드물게 공정한 캐릭터였다.
민영이와 둘이 도망가서 살면 어떻겠냐, 여기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겠지만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다, 그 방법이 최선 아니겠냐고 묻는 형에게 선우는 "이제 선택권은 민영이에게 있다. 우리는 이미 실패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내내 느꼈지만 또 한번 감동을 주는 그 칼 같은 공정함!! 형도, 자신도 과거를 바꾸어 최선의 현재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현재는 그럴수록 점점 더 꼬여갈 뿐이었고, 마지막 선택은 민영이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책임감!!
스스로를 대상화해서 볼 줄 알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들이는 인간을 얼마만에 TV 드라마에서 만나는 것인지ㅠㅠㅠ <텐>의 여지훈이 여친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자기 인간성까지 기꺼이 절망적으로 감수할 때, 그의 매력은 폼나는 '악마성'이 아니라 자신의 악마성을 들여다보는 '절망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나인>의 박선우도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 인과의 무서움을 "알고" "받아들인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명백하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아는 만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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