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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지금 나는 보이스 레코더에 녹음 중이다'라고 상상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묘사해보려 했다. 하늘, 구름, 횡단보도에서 마주 걸어오는 사람, 문을 열었거나 아직 열지 않은 가게들에 대해. 의외로 힘들었다. 보이는 한 가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면 곧 어설픈 상념이 뒤따라 오거나, 그걸 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주의가 돌아가곤 하는 것이 내 버릇임을 알았다. 한마디로 주변에 관심이 없는 거다. 대체로 멍하니 이런저런 텍스트를 읽으며 나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게 시간을 보내는 내 버릇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집중하기 힘들어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오래 이어가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영혼을 갉아먹기(!) 전에도 정처없는 생각을 골똘하게 끝없이 이어나가긴 했어도, 현실적인 관찰과 분석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미스테리를 좋아하는데도 탐정과 경쟁하려는 마음을 품어보지 못하는 것 역시 내가 관찰과 분석에 재능이 없다는 자각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어리고 팔팔할 때보다 생각하는 힘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니까 나 자신에 대해 골똘해지는 것도 힘들다. 생각의 힘을 기르는 건 오히려 묘사와 관찰, 그에 대한 분석의 연습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각운동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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