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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제시대 관련 책들을 연이어 만지고 있다 보니, 각종 비극, 참극, 고난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피해의 규모를 산정하지 못한다는 설명을 자주 접한다. 간토 대지진으로 죽은 조선인의 숫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현지에서 죽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숫자, 경신참변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의 숫자, 기타등등, 기타등등.
수많은 상이한 통계치들 중에 무엇을 믿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통계치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 중 피해자들을 구호하거나 보호하는 데 관심과 책임을 가진 기관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참칭하며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이들의 지배하에 있을 때, 생명의 존재감은 제로로 수렴된다. 얼마나 평안할 수 있는가는 고사하고,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는가는 고사하고, 시스템에 의해 죽임당한 뒤 시신의 존재조차 부정당할 수 있다. 그것이 식민지를 산다는 의미. 내가 만들지 않은, 힘으로 나를 억누르는 국가의 백성이 된다는 것.
시도 때도 없이 울컥울컥하게 되는 일상이지만, 이 '숫자'의 불확실성이 까마득한 절망감으로 다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대일본제국과 얼마나 다른가. 다르긴 한가. 자신들이 보호하는 데 실패한 생명의 '숫자'를 세는 데 그토록 무능했던 이 나라에서 나는 식민지 백성인 줄도 모른 채 식민지 백성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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