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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는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그것도 거의 겹치는 시간대의 이야기들을 다룬 드라마 두 편. 선덕여왕은 지금 고시청율을 자랑하며 방영중이고, 서동요는 세상에 이 드라마 아끼는 동료 한 명을 못 만난 채 홀로 열광하다 지나간 예전 드라마다.
최근 뜬금없이 필이 꽂혀 클럽박스를 검색했더니 서동요 전편이 올라와 있는 박스가 있길래 다 다운받아서 찔끔찔끔 보고 있다. 고증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난 사극들이 그 사이 몇 편이고 나왔고, 궁중의 정사 위주가 아닌 사극도 많았다. 다시 보니 서동요의 남녀 주인공은 그때 느꼈던 것보다 대사가 상당히 서툴구나. 표정도. 하지만 또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드라마와 겹쳐 보는 재미가 새로이 쏠쏠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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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국선 문노의 후계(자 자리를 비담에게 빼았겼던) 임종랑. 서동요에선 백제 위덕왕의 왕위를 잇고자 하는 동생 부여계와 그 아들 부여선이 휘두르는 행동대의 중간보스 역할로 나온다. 태학사 사람들을 몰살시키려던 기습작전의 현장 지휘를 맡았다. 이후에도 간간이 엑스트라 느낌으로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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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어느 한귀퉁이에 나오던 이름을 서로가 창의적으로 갖다 쓴 듯한 '고도'
서동요에선 백제 성왕 일행을 기습해서 체포한 뒤, 일부러 신분이 낮은 일반 병사의 칼에 죽는 치욕을 안겨주는데, 그때 신라 병사로 나와 성왕의 목을 친 것이 '고도'였다. 선덕여왕에서는 죽방의 똘마니로 밥밖에 모르는 무식하고 귀여운 낭도로 나오는데, 서동요에선 홀쭉하고 딱 봐도 연식이 있어 보이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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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미실이 비일상적인 군사동원을 합리화할 때 툭하면 끌어다 쓰는 핑계가 '백제 첩자' 얘기다. "백제 첩자가 숨어들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면 불심검문, 임의동행, 가택수색, 뭐든지 가능하다. 서동요에선 부여선의 핍박을 피해 백제에서 신라 땅으로 숨어들어온 태학사 식구들이 그 '백제 첩자'를 경계하는 수색의 눈길을 피해 엄중한 보안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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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것을 빼먹었네. 선덕여왕의 주인공 덕만과 천명의 동생 선화가 서동요의 주인공인데. 선덕여왕에선 숨겨진 쌍동이 동생 덕만이 몽골 사막까지 섭렵하며 레벨업을 하고 돌아와 천명과 극적으로 만나지만, 서동요에서는 세 자매가 각각 '딸에게 왕위를 이어줄 의지가 충만한'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부지런히 대권수업을 받는다. 예전에 본 기억으론, 서동요에서는 선화를 제외한 두 언니가 꽤나 박색으로 그려졌던 것도 인상적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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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이 가야 출신이고,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은 가야 백성들을 지킴으로써 자기 세력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실과 투쟁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월야/설지 등 옛 가야의 복권을 꿈꾸는 이들을 포섭하고, 미실의 권력으로부터 가야 유민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동요에도 가야 유민들이 나온다. 궁을 나와 신라를 주유하던 선화가 가야유민들이 과도한 세금과 흉년에 못이겨 반란을 일으킨 마을에 연금된 것. 그들은 선화에게 '나라에서 황폐한 항무지를 주고 과도한 세금을 요구하여 도저히 살 수가 없다'면서 처지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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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비옥하게 할 수 있는 시대의 격물.
가야 유민들의 에피소드에서 서동은 소금기에 찌들어 황폐한 땅에 석회를 뿌려 지렁이를 끌어들이고, 그 지렁이들로 옥토를 만드는 새로운 농법을 소개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한다. 엊그제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이 지방을 순찰하면서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개간법을 궁구하고 있었다. "선화한테 물어보셈"이라고 말하고 싶더라 ㅎ
뭐, 이밖에도 서동요를 아직 1/5 정도밖에 못본 셈이니 새록새록 재미있는 일치점들이 나올 듯하다. 두 드라마 모두 사료 자체가 별로 없는 시대에 대해 한껏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려가고 있는 셈이라서 크게 의미가 깊지는 않을 테지만, '겹쳐보기' 자체가 두 드라마 모두의 재미를 더 끌어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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