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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 Who Bore Me - Spring Awakening
오랜만에 뮤지컬을 보고 왔다. 연강홀은 그 뒤로도 한두 번쯤 갔었지 싶은데, 역시 낙타와 <렌트>를 보러 갔던 그곳으로 여전히 각인되어 있다. 이미 까마득한 옛일이고, 마지막으로 가본 것도 몇 년 전이다. 그 사이 허름했던 연강홀은 깔끔하게 싹 바뀌어 있었다. 동시에 티켓값도 올라갔다는 게 에러긴 하지만-_-;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예매를 한 지도 너무 오래 전이라 내가 왜 이 뮤지컬을 보기로 결심했었는지도 기억 나지 않았다. 가보니 김무열이 주인공이었고, 자리에 앉으니 티켓링크 예매 페이지에서 뮤지컬 넘버를 몇 곡 들어보고 마음에 들어했던 기억도 났다.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작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줄맞춰 앉아 있던 모습을 보고 무의식 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 풍을 기대 혹은 예상했던 것 같다. 어차피 그 비쥬얼로 반은 맞을 수밖에 없는 예상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틀렸다.
틀렸다는 건 이 드라마의 공간이 학교에 한정되지 않았고, 아이들의 고민은 훨씬 더 성적인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청교도적 금욕주의, 위선과 가식이라고 해야 할까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공포라고 할까...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던 때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 드라마의 '어른'들은 증오스럽다기보다는 불쌍했다. 그들 스스로 그어놓은 선,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그리고 익숙한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아둔한 사랑의 무능력함. 둘은 죽었고, 하나는 길을 떠났다. 마지막 결말은 너무 억지스럽게 희망을 말해버린다는 점에서 <뱃보이>보다 실망스럽긴 했지만 춤과 음악은 멋졌다. 특히 극을 시작하는 소녀들의 노래 'Mama who bore me'랑, 온몸의 벌레(혹은 굴레)를 미친 듯 뿌리치는 아이들의 광적인 춤동작.
한편으론 모든 면에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낙오자 슈티펠의 절망도, 금단을 꿈꾸는 벤틀라의 무구한 호기심도, 심지어 주인공 멜퀴어의 분노도 뭔가 제대로 된 형체가 빚어지기 두어 발짝 앞에서 멈춘 듯한 느낌이었달까? 더 강렬해야 한다, 더 치명적이어야 한다, 이런 요청 자체가 상업주의에 중독된 둔감한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발하는 듯하다가도 금방 아련한 하모니로 속삭이는 음악의 전반적 기조를 감안하면, 두어 발짝 앞에서 스톱하는 캐릭터들 또한 애초에 의도된 바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의도된 망설임이 내게 전하고자 했던 무엇을, 나는 놓치고 온 걸까? 기회가 닿는다면 한두 번쯤 더 보면서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극중의 아이들에 비하면 아직 어리지만 나름의 질풍노도로 진입해들어가는 두 어린 영혼들과 일주일의 시간을 보낸 뒤 만난 작품이라 조금 더 각별했던 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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