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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지난주에 끝났는데 본방을 못 보고 있다가, 다운받은 파일로 어제 두 편을 자체 연속상영해서 드디어 종방. 뿌꾸가 자명이의 운명을 자각하는 시점을 즈음해서 완전히 배우의 역량부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힘이 좀 빠졌는데, 막판 급전개 속에서 중견 연기자들의 빛나는 연기들 덕분에 결국 감동의 눈물을 철철 흘리며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다.
굳이 동북공정 얘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고구려는 영광의 나라였다. 그 고구려를 "잔인하고 우악스러운" 침략국가로 설정하는 순간, 그 어떤 멜로를 절절하게 연출할지라도 이 드라마가 비주류의 운명을 감당해야 할 것은 뻔해 보였다. 자명-라희-호동을 둘러싼 삼각 멜로라인은 가면 갈수록 안드로행이였지만, 낙랑과 고구려의 두 왕, 왕비들, 대신들, 군인들이 보여준 고대사회 정치 드라마는 내가 여태까지 본 어떤 사극보다 감동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나는 늘 '확신범'에게 약하다. 인간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현실을 재빨리 냉철하게 파악해서 다음 스텝을 밟는 사람. 불필요한 일에 흥분하거나 분노할 시간에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최악의 상황에서도 늘 차악을 선택하고 그 뒷감당을 묵묵히 변명없이 하는 사람.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런 자기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 끝내는 순순히, 혹은 자청해서 그 벌을 받고 사라지는 사람.
마지막 두 편 분량에서 최리의 포인트는 나라를 팔아먹은 딸에게 백성들에게 맞아죽는다 해도 달게 받으라고 하면서 그래도 혹시 살아남는다면 고구려의 왕비가 되어 낙랑 백성들을 한 명이라도 더 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라고 했던 부분.
모하소의 포인트는 딸의 배신으로 낙랑이 위험에 처했다는 걸 안 다음 순간 번개같이 간호사복(?)으로 갈아입고 라희한테 가서 빨리 갑옷을 입고 왕을 따르라고 일갈하던 장면.
대무신왕의 포인트는 낙랑과 형제국 하자며 칭얼대는 호동에게 두 나라 인구 격차를 들이대며 조목조목 그럴 수 없음을 설명하던 장면.
완소 모양혜 언니의 포인트는 당연히 갑옷 입고 칼 번쩍 치켜들던 그 장면. (그러나 왕홀과 손 맞잡고 죽을 땐 살짝 손발 오그라들었;;)
그리고, 참 흥미로운 캐릭터였던 송매설수. 난 당신이 호동이 죽으면 그렇게 슬퍼할 줄 이미 알고 있었어. 무휼을 중심으로 호동과 거울처럼 마주보며 대치했던, 호동만큼 외로운 매설수 언니. 솔직히 자명이랑 호동이 동반자살할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매설수 언니가 바닷가에 주저앉아 흐느낄 땐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또 재밌는 드라마 하나가 끝이 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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