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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하이킥.
다늦게 하얀거탑에 살짝 꽂힌 걸 제외하면 요즘 거의 유일하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거침없이 하이킥. 그중에서도 매회 가장 열광하는 대상은 조금씩 바뀌는데, 최근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나문희 여사다.
어제와 그제 다운받아본 건, 장동건을 질투하는 이순재 원장 + 채인 뒤 대드는 서민정 선생 에피소드와, 민호 외할머니에게 열등감 느끼는 나문희 여사 + 이민용 선생에게 제대로 당하는 유미 에피소드. 이틀 연속으로 나문희 여사가 메인캐릭터로 나왔다.
나문희 여사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연기가 이미 연기가 아닌' 경지란 무엇인지 감탄하게 된다. 되도 않는 꼬투리를 잡아 유치하게 마누라에게 강짜부리는 영감님에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강대강 되받아치는 모습이나, 연애질이 너무 힘들어서 오랜만에 엄마 품에 폭 안겨보려는 막내아들에게 타박을 주면서도 토닥토닥해주는 모습이나, 친구에게 전화로 손자녀석 자랑질하는 모습이나, "나 죽으면 그저 밥이나 열심히 차려준 할머니로 기억할 거야" 하면서 울먹울먹하는 모습이나,
연륜에서 우러난 치밀하고 세심한 설정들은 하나도 '설정'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걸쳐입은 옷가지 하나부터 대사 없이 삐죽거리는 입술모양까지 그냥 우리 엄마고 우리 할머니다.
TV에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내가 익히 보아온 평범한 초로의 할머니. 입맛 없어 보이는 아들 위해서 늙은 호박 사다가 죽 끓이려고 썩둑썩둑 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너무 감동스러웠다. 평생 연기자로 활동했으니 부엌일 얼마나 했을까 싶은데도 까스레인지와 식탁 사이를 오가며 그리 열올리지 않고 평범하게 음식 준비하는 모습이 촬영 같지가 않았다. 정말로 조금 있으면 큰 들통에 한가득 호박죽이 끓고 있을 것 같았다.
하얀거탑의 김창완을 보면서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는데,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박력 면에서나 디테일 면에서나 우리에겐 쉽게 취급할 수 없는 범상치 않은 중견 연기자들이 꽤 많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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