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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세심하게 '나'를 연출하면서 살고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그럼에도 가끔씩 '어라 이게 아닌데'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때로는 귀신같이 숨겨온 줄 알았던 비밀스런(?) 면모를 "너 그거 다 티나... 몰랐냐?" 하는 식으로 어이없이 들킨 적도 있었고, 진짜 내 모습도 연출한 모습도 아닌 '이건 뭥미'스러운 오해를 '내 모습'으로 받아들여버린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내심 자신만만했던 그 '연출'이란 아무 효과도 없는 자기최면의 방어술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숨겨온 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간 사람들은 통찰력이 아니라 관심의 부족 때문이었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오해라고 억울해했던 부당한 평가들은 가감없는 내 모습이었을지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
...이것은 성숙인가! 뭔가 어른스럽고 겸허하군 ㄷㄷㄷㄷㄷ 하여튼.
오해, 혹은 연출의도의 잘못된 전달이라고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가 나의 '공격성'이다. 발랄함 혹은 유쾌함, 편안함을 전달하고자 했던 지점에서 '공격성'을 읽어냈던 몇몇 사람들이 떠오른다. 공격성이거나 당돌함, 건방짐, 그런 비슷한 특성들. 나는 그것이 내 취향, 내 스타일에 대한 자기애(타인의 그것을 똑같이 존중하는)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냥 말장난이고 그들의 느낌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냥 공격성, 그냥 건방짐, 그냥 오만함. 긴급처방은 말을 줄이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은 한마디 할 때보다 한마디 묻을 때 나은 결과를 내더라. 그래, 어른이라면 대부분 그러듯이.
긴급처방전은 나왔는데 아직도 석연치 않다. 이대로 좋은가... 아니 물론, 나쁠 이유도 딱히 없긴 한데, 나쁠 이유를 못 찾는 내 오만함이 도돌이표의 근원인 것 같고, 그 바깥에 내가 모르는 나의 함정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싶은.
이럴 때 누군가 "넌 괜찮아, 충분히"라고 말해주면 위로가 되긴 하지. 일요일 밤에는 김밥을 호출하여 몰핀을 맞았다. 하지만 몰핀도 역시 치료제는 아니다. 좀 더 생각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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