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엽기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토록 '나 끔찍해 나 하드해' 하고 외치는 직설적인 제목은 흔치 않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책을 펼칠 때는 조금 남의 눈이 신경쓰일 때가 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율리아 뒤랑 시리즈. 1/4 정도 읽은 시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몇 가지 점들.
1. 리즈베트 살란데르를 만난 직후라서 그런지, 원래 그런 여자임을 알고 있음에도 율리아 뒤랑이 너무 지나치게 감정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맨날 비슷비슷한 변태 연쇄살인범들과 대적하면서도 또다시 주절주절 도덕적 분노를 타령조로 늘어놓는 장면에서 '이 여잔 지치지도 않나' 하는 피곤함을 살짝 느꼈다. 언론에 대한 상투적인 거부감, 전체 사회와 관료조직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의식, 문제는 그게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진다는 점.
2. 다른 건 그러려니 하는데, 이번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가 초반에 나와서 뭥미 싶었다. 살인 피해자의 개인재산 일부를 피해자의 룸메이트에게 주고 살림에 보태 쓰라니 이런 경찰은 소설에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청 가슴이 따뜻한 여자라서 할 수 있었던 남모르는 선행처럼 넘어가는 게 황당하기까지 했다.
3.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에 가서 소변부터 보고, 빵에 버터를 발라 살라미 소세지를 끼워 맥주 한 캔과 함께 먹는 장면을 보면서는 그 익숙함에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식으로 독자를 훈련시키는 방법도 있구나 ㅋㅋ
4. 부잣집 여편네들 돈지랄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정신과 상담, 의사와의 불륜관계, 상담시간의 치료를 빙자한 밀땅 등은 너무 자주 봐서 이제 지겹다. 제발 이런 정신과 의사들 좀 그만 등장시키라고요.
5. 동료와 상관을 대하는 율리아 뒤랑의 말투나 행동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늘 혼자서만 말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진행시키는데, 그 근거는 그냥 '감'일 뿐이다. 물론 그녀의 뛰어난 직관과 육감이 이번에도 사건을 해결하고 말겠지만, 어쩐지 전작에 비해 안하무인스러운 느낌이 좀 강하게 들어서 의아하다. 전에는 훨씬 괜찮은 팀 같아 보였는데 이번엔 왜 다른 느낌일까?
처음에 신원도서관에서 빌려서 1주 연장까지 3주간 한 글자도 안 읽었고, 다시 정독도서관에서 빌려서 1주 연장까지 3주간, 마지막 3주째(통틀어 6주째)에 겨우겨우 억지로 억지로 진도를 빼서 다 읽었다. 요즘 재밌는 책들을 잔뜩 읽은 뒤라 눈이 높아진 건지 인내심이 줄어든 건지 하여튼 정말 힘들었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힘들게(?) 읽은 게 아닐까 싶다.
율리아 뒤랑은 이제 안녕할 때가 된 것 같다. 매번 자기복제가 너무 심하고 캐릭터는 점점 히스테릭한 아줌마 느낌이 짙어진다. 늘 하던 타령만 계속하는데 주인공은 보면 볼수록 무능해 보인다. 직감 어쩌구 하면서 잘난 척하는 것도 내 스타일이 아니고. 그저 그녀의 냉장고, 토마토수프, 살라미 샌드위치 같은 것들에 정감을 느끼며 계속 보기엔 이제 기대감이 바닥이 난 것 같다.
그래도 그녀의 납치 스토리와 이후 캐릭터 변화에 대한 일말의 궁금증은 좀 남아 있긴 한데... 흠.
'B'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1] 피리술사 (0) | 2015.01.14 |
---|---|
[2014-43]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 (0) | 2014.12.26 |
[2014-41] 벌집을 발로 찬 소녀(밀레니엄 3부) (0) | 2014.12.08 |
[2014-40]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밀레니엄 2부) (0) | 2014.12.08 |
[2014-39] 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0) | 2014.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