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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겁니다. 히루카와는 사형을 형벌이라고 여기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였지요. 재판을 통해서 그가 본 것은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가느냐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요. 그가 상고를 취하한 이유는 겨우 운명이 정해졌는데 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이제 모든 게 귀찮다,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형이 확정된 후에도 편지나 면회를 통해서 나는 계속 그에게 연락을 했지요. 그가 자기 죄를 똑바로 바라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사건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운명밖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 사형은 무력합니다
<방황하는 칼날>에서도 그랬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입장, 유가족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질문들이 자주 나온다. 아주 무겁고 고통스러운 질문임에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동안 이 질문을 대하는 방식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질문의 무게에 비해 너무나 상투적인 접근으로만 느껴졌고, 뭔가 영혼이 없달까...?
내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편으로는 아무런 기대도 주지 않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늘 평타치는 약속해주는, 그래서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믿고 보는'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그래서 뭔가 볼 게 많을 때는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딱히 뭘 볼지 잘 모르겠을 때 선택하는 게 보통인데, 워낙 그가 다작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팬'이었다면 국내에 번역된 것들은 다 마스터했을 거다. 지금은 그냥 드문드문, 체감상 한 40% 정도는 봤을까 싶다.
그렇게 드문드문 봐오던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이것봐라...?' 하는 느낌, 묵직한 공감의 무게를 느껴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초중반에 '그래도 역시 히가시노풍의 대충대충이군' 싶었던 설정도, 이야기가 풀려 나가면서 강한 설득력을 얻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처해, 받아들여야만 하는 굴레 밑에서, 영혼을 걸고 질문하고 답하는 이들의 생생한 고통이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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