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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연애질하며 돌아다니는 젊은 것들을 볼 때, 가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 철없고 예의없고 배려없이도 연애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냥 딱 봐도 쟤들은 서로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고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어디 엉뚱한 곳에서 치밀었던 화를 아무렇게나 상대방에게 풀어버리고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이가 어이없어서 뚱하니 한마디 하면 무슨 천하에 못할 말이라도 들은 듯 펄펄 뛴다.
'저런 태도로 연애라는 게 가능하단 말이야?'
...라고는 했지만, 어쩌면잘못된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은 그 반대편에서 나를 참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소설의 핵심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일부일처제라는 것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유일무이한 사랑의 방식은 아니라는 도발에 있었다. 여자와 남자가 끌어다붙이는 다양한 인문학적 근거들이 매 장마다 전통과 습속을 도발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삶,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역설한다.
맛깔스러운 문장, 유머러스하고 시종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내러티브, 여러 모로 재기발랄한 소설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주장하는 바 역시 하나의 명제로서 전혀 거부할 만한 것이 아님을 알겠는데도, 나는 거부감이 일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그 선진적인 논리를 헉헉거리며 따라가는 방식,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동의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낯선 사랑을 일방적으로 내게 강요하는 이에게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따라가지는 마음이 싫다. 사랑을 하는 이유는 새롭고 올바른 사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내가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의 사랑이 옳고 자유롭다는 것을 현란한 교양과 말빨로 설득시키지만, 그는 '말'에 설득당한 게 아니었다. 여자가 뭐라고 말하건 말건, 그가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녀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건, 폭력 아니야?
그렇게 당하면서까지 여자의 행복과 기쁨에 굴복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해?
...그것이 내 차선의 행복이라고 해도, 나는 분해서라도 그렇게 하기 싫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나의 유치한 정의감이 말했다.
...이것 역시 한참 모자란 생각이지?
사랑을, 연애를 몰라서 이런 거겠지?
어쨌든. 싫었다. "그만 닥치고 그냥 남자를 떠나. 그 남자는 너의 그 잘난 사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고 있잖아"라고 여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가져야만 하겠다는 심뽀가 미웠다.
읽으라는 것은 읽지 않고, 생각하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이런 생각만 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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