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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인천유나이티드.
장외룡 감독(대행)과 주장 임중용을 중심으로
돈없고 스타플레이어 없는 팀으로서 챔피언시리즈에 진출, 아깝게 준우승한 팀.
조금 뻔하게 흐른 줄거리,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묘사된 (사실 지나친 영웅이었을지도 모를) 장외룡 감독과,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어서 현실에도 저런 주장이 있을까 싶었던 임중용 선수.
감동해라, 정말 찡하지 않니, 스포츠는 아름다워, 역경은 이겨내라고 있는 거야, 기타등등
다 좋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거의 2주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에 박혀 있는 두 개의 장면은,
(1)
기적이 시작되기 전, 맨날맨날 지던 어느 날 숙소에서 그날 경기 골을 먹은 장면을 몇몇 선수들이 모여 복기하고 있었다. (이름을 까먹은;) 골키퍼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그런 건 수비수가 걷어내줘야지... 그걸 못 건드리니까 골이 들어가는 거 아냐... 그걸 못 막으면, 응? 그럼 우린 맨날 져야 하는 거야?"
최효진...이었나, 그런 이름의 젊은 수비수는 말했다.
"난 머리에 닿을 줄 알았지. 닿을 줄 알고 뛰어 올랐는데... 그런데 안 닿는 걸 어쩌라고. 어떻게 해, 닿지를 않는데."
두 사람의 무의미한 동어반복 속에서, 최효진은 얼핏 듣기에 굉장히 무성의한 말투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 말만을 반복했다. 닿을 줄 알고 뛰어 올랐는데 안 닿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나보고 어쩌라고. 안 닿는 걸 어쩌라고. 닿을 줄 알았는데, 뛰어 올랐는데, 안 닿는 걸 어떻게 해.
어린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수비수의 얼굴에 담겨 있던 설익은 절망.
(2)
기적이 끝나던 순간. 울산에 무릎을 꿇은 인천 선수들이 망연자실해 있었다. 펑펑 우는 선수도 있었고 기진맥진해서 잔디밭에 주저앉은 선수들... 다른 이들을 다독이며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선수들... 가슴이 찡했다.
그러던 한 순간, 카메라가 인천 골대 뒤의 서포터즈석을 향했다. 플랭카드가 보였다.
고개 숙이지 마! 너희가 울면 우리는 피눈물이 난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가...
그리고, 서포터즈석 맨 앞자리에서 두 명의 장성한 젊은이들이 꺼이꺼이 울면서 (아직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선수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빨리오라고,내 품으로, 우리들만의 공간으로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필사적인 그들을 보면서,결국 조금 울어버렸다.정말 팬이고팀이고,저만큼 서로 통해있다는 느낌으로 전력질주하고 나면 사실 승리나 패배는 의미가 없어진다. 나는그 서포터즈들이 낯익어보였다. 아니, 솔직히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마음은, 우리들이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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