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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다가 말았다.
부제가 너무 멋있고 표지도 너무 멋있어서 일단 질러버렸는데, 온라인 서점의 맹점이지. 난 그렇게까지 두껍고 어려운 책인 줄은 몰랐던 거다. 게다가 앞부분 1/3 정도만 미시마 유키오와 전공투의 토론이었고 그 뒤로는 당시 전공투 멤버들의 회상, 좌담 등을 통해 전공투 사상을 규명하는 내용이었다. 토론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를 이야기이긴 했지만 나름의 재미는 있었는데(사실, 아주 재미있었는데) 그 뒷부분을 머리 싸매고 읽다가 ‘그런데 내가 지금 왜 전공투 사상을 공부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놓아버렸다.
극좌 학생운동조직이었던 전공투가 보수적인 현대 일본의 지도층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선언하며 ‘연대’를 구했던 대상이 극우 사상가 미시마 유키오였다는 점부터가 흥미로웠다. ‘연대’라고는 했지만 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 방식으로 ‘연대’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그건 마치 사무라이들의 대결과도 비슷했다. ‘겨뤄볼 만한 자’로서 상대를 지목하고 날을 정해 칼날을 맞대어본다는 느낌. 그것은 양자 모두에게 ‘연대’를 통해 나아갈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낯설고도 놀라웠던 것은 그런 점이었다. 존재하는 세계에 반대하면서도 지향하는 미래도 돌아갈 과거도 없는 운동체라니.
토론은 매우 생생했다. 난해한 그들만의 철학개념이 붕붕 날아다녔지만, 구태여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하나의 사상과 다른 하나의 사상이 날렵한 스텝으로 결투하는 현장이었다. 칼날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금속성, 가쁜 숨소리, 각자의 독특한 보법, 순간 긴장이 풀어지며 흘러나오는 웃음까지. 가끔은 낄낄거리며, 가끔은 저절로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마치 스릴 넘치는 영화 한 편을 보듯이 그렇게 토론을 따라갔다.
그렇지만 그 토론을 읽고 몇 달이 지난 지금,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는 것은 전공투 젊은이들에 대한 ‘동정’이랄까... 내 주제에 동정까지는 너무 건방지고, 청춘의 한 모델로서 그들을 보며 서글픔을 느꼈달까. 전쟁을 일으키고 패했던 세대, 그 폐허에서 다시 일본을 일으킨 세대, 그 과정을 방관하고 동조하며 따라왔던 일본의 민중들 모두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뿌리없는 전공투의 허무한 미래가 서글펐다. 그 어떤 구체도 얻지 못한 채, 모든 것에 대한 ‘부정’으로서, 순수한 ‘추상’으로서 그들이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앙상한 미래상이 가슴아팠다.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자기부정의 허허벌판에서 그들이 역설하는 미래상은 마치 살아보겠다고 간당간당 부여잡고 있는 지푸라기 밧줄같이도 보였다.
무시무시할 만큼 자전적인 소설, (오에 겐자부로를 노출증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봤다) 체인지링의 주인공들도 전쟁과 패전, 국가재건의 과정에서 ‘일본인’으로서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는 뿌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점령군의 시선, 극우 천황파의 시선, 그 어느 것에도 동감할 수 없었던 소년들은 짐짓 개인주의의 심연으로 몰입하여 시와 문학, 예술에 탐닉하고자 하지만 결국 현실의 폭력에 의해 훼손되고 잠식당할 수밖에 없었다. 상징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그로테스크한 경험을 통해 체득해버린 자기혐오야말로 그들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었다. 뒤바뀐 아이들은 훼손당한 육신과 영혼으로 추운 겨울나라를 살아간다. 그리고, 비록 구원의 시간을 (끝없이) 지연시킬 실수를 저지르며, 라고는 해도 누이는 소년들을 구하기 위해 추운 겨울나라를 향해 길을 떠난다.
(여기서 잠깐. 아니 왜 하필 또 누이, 여성, 출산이여. 노벨상 작가는 역시 달라. 진부하잖아?)
고기토와 고로는 각자의 삶에 그토록 큰 영향을 끼친 사건임에도 결정적인 순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각자가 겪은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평생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의 공유라는 사실, 언젠가는 ‘그것’에 대해 공동으로 기억하고 작업해야 하리라는 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과 ‘그것’의 관계는 어딘가 독특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혐오하면서도 감수하고, 잊지 않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의 적이라기보다는 자기 몸속의 암세포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어둠, 절망에는 어딘가 퇴폐적인 냄새가 배어 있고,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전후 일본의 지식인들, 혹은 전공투세대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그것’으로부터 걸어나오지 못하고 누이들의 자궁 속에서 몇 번이고 새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 자체가 그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글쎄... 그러한 정서나 감정 상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일본 땅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 중에라도, 그렇게 진지하게 자기파괴적 갈등을 끌어안은 이가 몇이나 될까.
벌써 그들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일본에든 동아시아에든 세계에든 이미 더욱 막강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지 오래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뭣도 모르면서 슬프고 애닯던 저들은 오래 기억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해도, 인간은 이렇게 살고 고뇌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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