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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시마 마코토, 800 Two Lap Runners, 작가정신, 2005.
그건 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때였던 것 같다. 늦은 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나는 지구 반대쪽에서 쨍쨍 내리쬐는 햇살 아래 윤기 흐르는 근육질 맨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질주하는 인간들을 발견했다.
유선형의 장딴지 아래 근육질의 종아리, 작은 발. 가슴은 작고 어깨도 좁았던 여자들의 가느다란 팔뚝엔 강하게 바람을 차고 날아갈 수 있을 만큼 단단한 근육이 빈틈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경쟁하는 선수들이 출발신호와 함께 튀어오르던 순간은, 당시의 감동이 익명으로 묻혀진 지금까지도 각종 국제대회에서 내가 육상경기를 기다리도록 만들어준 초체험이 되었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더 빨리 도달하겠다는 단순명쾌한 목표를 위해, 온갖 과학의 결정체인 훈련과 장비와 식이요법과 작전과 기타등등을 동원하여, 본질적으로는 몸과 몸의 맞부딪힘으로 투쟁하는 우월한 육체들. 거기에는 정말로 한 치의 저항감도 없이 ‘우월’이라는 글자를 붙여줄 수 있다. 그들의 몸은 나의 몸, 평범한 인간들의 몸보다 예술적이고 아름답고 우월했다.
800 Two Lap Runners, 한글 번역제목조차 없는 이 소설에서 ‘이다’를 묘사하는 문장들을 보면서, 내가 맨 처음 봤던 육상경기를 떠올렸다. 두 소년이 나레이터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간질간질 흔들리는 청춘을 어여쁘게 드러내는 와중에도, ‘이다’는 마치 여신처럼 말없이 뛰고 헤엄친다. 소설 속의 여신 ‘이다’에게는 정말로 100미터 허들이라는 종목이 잘 어울린다. 짧고, 그만큼 폭발적이면서도, 정지동작처럼 보이는 우아한 도약의 연속. 그것만큼 ‘이다’의 우월성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이미지는 없을 것 같다.
반면에 “가장 긴 단거리”라는 800미터를 존재의 이유로 삼아버린 두 소년은 순수하고 완벽한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자체라고나 할까. 100미터도 1500미터도 아닌 800미터. 단거리의 속도와 장거리의 지구력을 한꺼번에 폭발시켜 쭉 뻗은 하늘로 곧장 달려가 안기는 거다. 마지막 두 소년의 경주는 정말로 글줄만으로 무심결에 주먹을 꼭 쥐게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코너를 돌아 쭉 뻗은 직선코스, 거기서 완전연소하기 위해 그들은 여름 내내 훈련을 하고, 연애도 하고, 섹스도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러기 위해 여름을 지나 그 순간까지 살아온 것이다. 틀림 없이.
청춘소설이되 성장소설은 아니었다. 그들은 러너, 400미터 트랙 두 바퀴를 더 빨리 돌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몸)들이다. 성장 같은 건 관심 없어. 생각은 끄집어내 볕 좋은 잔디밭에 좀 말려두고, 흔들흔들 몸을 풀면서 자기 근육을 느끼며 스타트라인에 선다. 승패 따위 중요하지 않은 한가한 경기가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킨 뒤, 마지막 순간에 심판은 아직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지만, 진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경기.
승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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