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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딱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되게 밀도가 낮은 거 같은데 아주 엉성하진 않고, 아니 어쩌면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이 아니라면 '이게 뭐꼬' 하면서 팽개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폰사이코, 혹은 폰피플은 좀비와는 다르다. 맹목적인 공격성이나 정상인에 대한 적개심, 혐오스런 외모, 돌발적 탄생 등등 비슷한 면도 많지만, 뭣보다 좀비는 '전염성'인 데 비해 폰사이코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매우 이른 시점에서(이걸 이른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조금 망설여지긴 하는데) 폰사이코 탄생의 비밀을 광범위하게 알아차렸다. 발병(?)의 계기가 핸드폰이라는 사실은 너무 대놓고 문명비판적이라 문명비판적 효과를 별로 발휘하지 못한다;;
초기의 혼란한 국면을 벗어나 폰사이코의 진화가 시작되면서, 이건 마치 인종 간의 전쟁 같은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정상인'들이 왜 '폰피플'과 공존해서 평화를 되찾으면 안 되는 건지 내 스스로 아리송해져버렸다는 얘기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무차별 학살을 일삼던 폰사이코들은 텔레파시와 (심지어) 초능력을 갖추고 서로를 배려(?)하며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진화하는 놀라운 학습능력을 보여준다. 그들이 '정상인'에 의해 절멸되어야 할 필연성은 초기의 학살에 대한 복수, 그리고 또 뭐가 있지...?
아무리 별거 중인 마누라라지만, 아들에 대한 주인공의 맹목적이다시피 한 애정에 비해 수차례 노골적으로 반복된 "차라리 그녀가 전화를 받았길"이라는 저주 아닌 저주는 도대체 왜 그리 강조되었는지 끝까지 모르겠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왜 그는 염불 외듯이 계속 마누라를 저주했을까. 내내 이 점이 굉장히 거슬렸다. 폰피플과의 운명적인 전쟁이 너무 싱겁게 끝나버린 황당함과 더불어.
뭐라고 딱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주인공과 작가의 불온한 사고방식이 순간순간 목에 턱턱 걸리는 일도 자잘하게 정말 많았다. 가족에 대하여, 핏줄에 대하여, 남자와 용감함, 투지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아 쫌 이건 아닌듯' 싶은 순간들. 여태 읽어본 스티븐 킹 소설 중에 제일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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