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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실감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모색. 행복하게, 고통없이 (그것이 착각이든 축복이든) 자리매김된 인간이라면 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정체'를 얻고자 하는 인간들의 몸부림은 다양한 형태의 균열과 이탈을 준비하게 된다.
사와노 료스케에게 그것은 '스우'라는 대체자아를 통한 온라인에서의 소통이었고, 다카시에게는 끊임없는 여성편력이었으며, 도모야에게는 '폭력', '힘'에 대한 귀의였다. 도모야는 살아남지만 그의 인격은 말살당한 채이고, 다카시는 '무'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에 지고 만다. 어쩌면 그건 마지막 순간 '스우'가 아닌 료스케로서 가장 단순하고도 확고한 삶에 대한 확신을 부르짖었던 동생이 소멸한 세계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료스케의 소박하고도 영웅적인 최후의 일갈, 거기 담긴 힘은 사람의 '애쓰는 마음' 아닐까. 누군가에게 더 가치 있는 동반자가 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서 애쓰는 마음. 실제로는 불가능하더라도, 계속 실패하더라도 언제나 원하고 애쓰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언젠가부터 뭔가를 원하고 애쓰는 일이 '쿨'하지 못한 일로 치부되고, 촌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쿨한 척'조차도 일종의 '애쓰는 마음'이다. 더 매력적인 존재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나'라는 존재 안에 확고한 진실성으로 다른 무엇도 없다 해도, 그 애쓰는 마음의 진실성 하나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면, 그걸 인정하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면,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도 그 사랑을 인정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다분히 현학적인 궤변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도 평소와는 달리 그닥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섬세하게 공들여 쓴 문장들이 내 취향에 어느 정도 부합하기도 했고, 묘사기법들도 여느 미스테리와 달리 개성적인 색채가 느껴졌다. 순수문학까지 통털어 말하자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이 쳇바퀴를 돌리는 고민의 단초들도 '어쩌라고' 싶은 한편으로 익숙한 공감의 영역 내에 있었고. 읽는 내내 불편하고 기분 나쁜 초조와 불안감을 주고, 읽고 나서는 씁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만나길 잘한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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