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오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경숙과 비문,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이것 역시 '이미지'일 뿐이겠지만.
세 군데 이상 발견했다.
리진과 황후의 관계는 흡사 동성애를 연상하게 했고, 다 읽고 나서는 '이건 동성애가 아니라 나르시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의 리진에 대한 감정도 그렇지만, 리진의 황후에 대한 감정이 그랬다. 전근대인으로서 근대를 너무 일찍 목격해버린 한 여자의 자기분열, 자폐, 절망.
왕도 콜랭도 강연마저도, 리진에게는 황후에게 투사했던 자기애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절대적 선망의 대상이었던 황후를 어느 순간 넘어서버렸으나, 넘어선 곳에서 리진이 발견한 것은 '굴레를 목격할 수 있는 자유'였다. 선망하던 이상을 더 이상 선망할 수 없으나 그 무엇도 극복할 수 없고 넘어서지 못하는 함정에 빠져 더 이상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던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황후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욕망의 상징과도 같았던 블랑 주교의 불한사전을 한 장 한 장 찢어 먹으면서 죽음을 선택한다.
신경숙답지 않은 서사라고 느꼈지만 결국은 여전히 '너무나도 신경숙다움'으로 가득찬 소설이었다. 도처에 깔린 아포리즘들이 지겹고 답답해 몸서리를 치면서 끝까지 읽은 보람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그린 클라이막스의 흥분으로 대강 보상받았다 여긴다. 어쨌거나 신문연재소설다운 통속성 덕분에 재미는 있었다.
끝없이 고결하고 상처받기 쉬운 빛나는 영혼을 지닌 신경숙의 여주인공들은 언제쯤 고의적인 고립이 빚어낸 슬픔을 벗어낼 수 있을 것인지. 콜랭에게 한마디 남기는 게 그리 어려웠니. 너에겐 안중에 없는 사람이었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부탁도 남기지 말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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