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이토 다카히로의 인터뷰 중.
"친근감인지 뭔지는 몰라요. 다만 스나카와 아줌마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어요. 엄마처럼 내 얘기를 자기 편한 대로 듣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어요. 그래서 말하기가 편했어요. 아줌마가 나를 정말로 이해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왜냐면 그렇게 잘은 모르는 사이니까. 하지만 아줌마는 엄마처럼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 미야베 미유키, <이유>, 419쪽.
추리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은 '범죄소설' 정도로 낙착된 <이유>.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막판 반전이라든지 하는 게 드문 건 아닌데, 내가 맞은 뒤통수는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책을 빌려준 조실장님께도 얘기했지만, 어쩐지 부모세대의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린달까.
그것도 '나와 너는 참 다르구나... 나는 네가 걱정스럽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너는 아직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라는 서글픈 표정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가족, 인간과 인간의 공존, 사회, 삶을 지지해주는 관계...
현대사회의 아찔한 단절감과 뿌리없이 부유하는 인간들의 위태로움, 부조리함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그의 시선에 담긴 현명함이나 신중함에 대한 호의와는 별개로, 나는 또 (그의 서글픈 표정은 역시 그럴 만한 것이어서) '당신이 내주는 해답은 내 생각과 달라요'라고. 논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고방식은 그것대로 지켜주고 싶지만 역시 내것은 아닐 수밖에 없다고 말할 도리뿐.
나는 고이토 다카히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커서 살인자가 될 수도 있어. 스나카와 아줌마를 죽일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그녀에게 느낀 그 '편안함'에는 분명 다른 가능성도 잠재되어 있어. 너는 그녀와 가족 이상의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어. 어떤 답이 나오는가 하는 것은 '편안함'에 달려 있지 않아. 중요한 건 네 뿌리나 돌아갈 곳 이전에, 부유하는 네 모습 자체야. 불안하게 떠다니는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마 똑바로 서로 시선을 맞출 때일 거야. 스카이다이버들이 공중에서 헤엄치며 커다란 원으로 손을 맞잡듯이, 필사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서로의 눈을 마주보면,가능하다고 난 믿어.
'B'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중그네 (0) | 2007.09.16 |
---|---|
야구감독 (2) | 2007.09.09 |
요츠바랑 (4) | 2007.02.28 |
호타루의 빛 (1) | 2007.02.19 |
번역과 일본의 근대 (0) | 2007.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