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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나는 콘서트, 서울시합창단

박쥐 2014. 8. 8. 10:50


2014년 8월 7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층 D블럭 2열 관람.


보름쯤 전에 세종문화회관에 갔다가 콘서트 광고전단을 보고 충동적으로 예매. 대극장에 언제 가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노틀담의 꼽추를 여기서 본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고, 확실한 건 3층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뮤지컬 넘버들이긴 하지만 '합창' 공연이라고 생각했기에 음악만 잘 들리면 됐지 무대가 잘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만 원이라는 싼 값에 부담없이 지를 수 있었다.


고작 만원이긴 했지만 명색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고 서울시합창단이어서 꽤나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대차게 실망을 안고 돌아왔다. 너무 수준 낮은 공연이었다고 100프로 폄하가 되면 그냥 돈버렸다, 사기당했다 생각해도 그만인데 이것보다 훨씬 좋은 콘서트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섞이니 분노가 더 커진다. 진짜 서울시합창단 관계자가 어제 공연 모니터링을 위해 구글이라도 돌려보다가 이 글을 꼭 보게 되면 좋겠다. 



1. 신디사이저가 왠말이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층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여튼 3층 1열은 눈치를 보아하니 시야제한석인 것 같았다. 난간에 가려 무대 앞부분이 보이지 않는 건지, 사람들이 허리를 세우고 몸을 굽혀 시종일관 목을 빼고 관람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앉으면 무대가 보이는 모양인데,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몸을 세우면 2열이 시야제한석이 되버린다는 점이다. 이게 정식 뮤지컬이었으면 못참고 항의를 했을지 모르겠다. 계속 너무 거슬려서 속으로 '릴렉스~ 릴렉스~' 되뇌며 참고 또 참았다. 


어쨌든, 그래서 무대 앞부분 절반 정도가 안 보이는 상태였으니 연주자석이 보일 리 만무했다. 앵콜 분위기로 흐를 때 잽싸게 나도 몸을 앞으로 빼고 연주자석을 확인했더니 그제사 좀 보이던데, 역시 러닝타임 내내 무대를 감싸고 있던 도도한 '싼티'의 주범이 거기 있었다.


현악파트와 타악기들은 갖춰놓고선 피아노와 관악기를 배치하는 게 돈이 아까웠던 건지, 떡하니 놓인 건 신디사이저 4대. 명색이 클래식 공연인데 우정의 무대 보는 줄 ㄷㄷㄷ 아니 내내 노래방 반주 듣는 느낌이었다. 다른 정규 합창공연도 이딴 식으로 악기를 편성할까? 이럴려면 그냥 연주 녹음해서 틀고 했음 좋겠다. 공연 내내 그 신디사이저 음색이 노래들과 너무 안 어울리고 싼티 퍽퍽 풍기며 혼자 귀에 튀어들어와서 너무너무 거슬렸다. 


또 하나 어이없던 사고, 이건 솔직히 기본 중의 기본이면서도 합창단의 책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당연히 개선되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일탈이었을 그 사고는 바로 지휘자의 지각. 이게 말이 되나??? 미친 거 아니야??? 100회쯤 계속되고 있는 공연도 아니고, 단발성 콘서트였다. 오늘이 첫공연이자 마지막 공연. 근데 당연히 몇시간 전부터 현장점검하고 리허설하고 공연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을 지휘자가 도대체 어떻게 공연에 지각을 해서 첫곡이 나가는 도중에 입장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후 음악이 마음에 들었으면 지휘자가 강요한 "사랑의 용서"를 해드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오묘하게 자꾸 빨라지는 리듬, 애초부터 너무 빠른 거 같은 속도,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계속 귀에 거슬리는 이상한 삐걱거림 같은 게 지휘자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다 깎아먹어버려서...-_-



2. 합창공연에 합창이 없네


서울시합창단 멤버들이 물론 출중하고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들 각자의 기량이 정말 솔로곡 하나를 완벽하게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솔로를 하지 왜 합창을 하냐. 솔로보다 합창이 수준이 낮다는 뜻이 아니라, 솔로에는 솔로의 장점이 있고 합창에는 합창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울시합창단 단원들은 그 합창에 최적화된 실력자들일 거고.


물론 몇몇 솔리스트들이 독창 파트로 곡에 긴장감과 악센트를 주고 그럼으로써 감동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건 나도 안다. 근데 어디까지나 이 공연의 근본은 '합창'이어야 했다. 아무리 뮤지컬 넘버들을 부른다고 해도, 자기 전문도 아닌 연기까지 하시면서 곡 하나를 온전히 책임질 만한 솔리스트가 서울시합창단에 그렇게 많을 리가. 왜 이런 무리수 컨셉의 공연을 기획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기대와 완전히 어긋난 부분.


난 당연히 기존 뮤지컬 넘버들을 합창곡으로 다시 편곡해서 불러줄 줄 알았다. 합창단의 뮤지컬 넘버 공연을 보러 가면서 이게 그렇게 엉뚱한 기대는 아니잖아? 실제로 공연에서 가장 감동적인 넘버들은 죄다 합창곡이었고, 일부 독창곡들은 가수들의 음색이 흐트러지고 고음이 안 올라가고 기타등등 보는 사람까지 낯뜨겁게 만들고 불편하게 만드는 수준 이하의 노래들이었다. 뮤지컬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음색과 창법을 다 따라가는 것도 역부족이었고. 예컨대, one day more의 테나르디에 부부 파트는 짧지만 이 곡에서 얽히고 설키는 다양한 욕망의 색깔을 깊게 하는 굉장히 중요한 파트인데 일반적인 클래식 창법으로는 절대 그 느낌을 소화할 수 없다. 렛잇고도 안나의 각성과 허세 느낌은 배제한 채 그저 이쁘게만 부르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고, 콰지모도는 정말 노래를 잘하는 분이었지만 인간보다 짐승에 가까운 콰지모도의 절규를 다 표현하기엔 역시 좀... 


원작을 어설프게 흉내내느니 차라리 합창의 힘을 강조하는 게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선택 아닌가? 왜 가장 잘하는 것을 보여줄 생각은 하지 않고 공연 대부분을 독창곡들로 채워서 스스로 공연의 질을 낮추는 건지. 편곡이 귀찮았나요? 그랬나요?



3. 영상 누가 만들었냐


이 공연의 주제가 '사랑'이었어야 할 필연성도 없었고, 솔직히 모아놓은 넘버들을 쭉 봐도 '사랑'이란 말로 묶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오전/오후 어중간한 시간대의 마이너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중고딩 명상의 시간에나 나올 법한 나이브한 콘티의 진부한 언어들로 노래들을 엮다가, 또 막 가사의 일부분을 번역해서 보여주다가, 영상이 참 대단히 들쑥날쑥하십니다.


그러면서 또 지금 나오는 이 노래가 어느 뮤지컬의 어느 장면에서 어떤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건지 그런 건 안내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로그램 사라는 거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지금 생각해보니 프로그램엔 뭐 자세한 설명이 있었겠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프로그램을 사지 않았어요 ㅋㅋㅋ..............-_-



4. 멀쩡히 번역가사들이 있는데 왜 때문에 콩글리쉬?


성악 창법으로는 영어 발음이 원래 안 되는 걸까? 아니 그렇다면 영어권엔 성악곡이 없겠냐 ㅋㅋㅋ 말이 되는 생각을 좀 하자-_- 발음은 사실 나도 스피킹 리스닝 다 안 되는 입장에서 누굴 뭐라기 참 그렇지만, 일단 '아름답게 들리지 않았다' 멜로디가 유려하게 흐르는 중에도 발음이 유려하게 흘러가지 못하니 귀에 자꾸 자국이 남았다. 이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멀쩡히 좋은 한국어 번역 가사들이 다 있는데 일부 곡은 한국어로 했으면서 또 어떤 곡은 왜 영어로 하는 건지. 그 선택의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번외로, 이제는 창작 뮤지컬도 흥행에 성공한 것들이 좀 있는데 그중 <서편제>와 <영웅>만 나온 게 좀 아쉽. 내가 본 건 아니지만 <명성황후> 같은 게 빠진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