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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홍도

박쥐 2014. 3. 19. 10:55






이것은 정여립의 외종손녀로 태어난 한 소녀가 역적의 자손이 되었다가 전쟁포로가 되었다가 비적떼의 일원이 되었다가 불사의 몸으로 변한 뒤 천주교인이 되고 400여 년간 국내외를 유랑하면서 사랑하는 이들의 환생을 거듭 만나 다시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헐... 황당해!!!


핀란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의 우연한 만남, 거기서 펼쳐지는 유장한 홍도의 추억담에는 확실히 보는 이의 마음을 잡아끄는 흡인력이 있었다. 다만 동현이라는 인물이 홍도에게 빠져드는 과정이 그저 '운명'이라는 한마디로 설명되기엔 어딘가 매력에 대한 설득력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혼불문학상 심사평에서도 지적되었듯이 그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작위성도 눈에 거슬렸고.


제일 인상적인 대목은 홍도가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오면서 맺은 정주와의 인연이 맺히고 풀리는 과정, 그리고 수없는 사람들이 죽고 또 죽어나간 천주교 박해의 목격담 부분이었다. 사실 천주교 관련 이야기는 전체적인 흐름에선 좀 튀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이물감이 있었는데, 그 자체의 이야기 속에서 몰입감이나 박력은 상당했다.


홍도는 이제 앞으로도 그렇게 회전문처럼 다시 사람을 찾고, 만나고, 50년쯤 사랑하다 다시 헤어지고, 떠나고, 찾고, 만나고, 헤어지며 살아 나가는 것일까? 그녀가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그 운명의 본질, 왜 그렇게 되어야 했고, 그렇게 됨으로써 무엇이 변했고, 그녀는 그 운명으로 어떤 사명을 받았는지, 그저 인연의 회전문이 되는 것 외에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부여도 되지 않는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발랄한 상상력이었지만 근본적으로 힘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