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다시 돌아온 히가시가와 도쿠야 읽기. 이번에는 마치 시트콤처럼 이어지는 단편의 시리즈물이다. 호쇼그룹의 영애이자 여형사인 레이코와 그녀의 집사 가게야마, 그리고 호쇼그룹보다 한 단계 아래인 자동차재벌집의 아들인 가자마츠리 경부가 주인공.
낮에는 평범한(?) 여형사지만 퇴근하면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와인을 마시는 재벌집 딸내미 레이코에게, 안락의자형 탐정인 가게야마 집사는 꼭 필요한 파트너다. 비록 "아가씨는 눈을 멋으로 달고 다니십니까?" 류의 폭언을 일삼기는 하지만, 레이코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미궁에 빠질 뻔한 범죄의 결정적인 트릭을 콕콕 짚어주니까.
거기에 은색 재규어를 몰고 다니며 재벌집 아들내미 티를 퍽퍽 내면서 범죄수사에서는 다분히 상식선(=레이코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추리력의 가자마츠리 경부가 레이코에게 은은한 흑심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면서, 이 시리즈는 일종의 삼각관계 로맨스물의 냄새까지 약간은 풍기게 된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맛깔나는 유머와 만담풍의 대화체는 여전히 유쾌하다. 또 <새소년>, <소년챔프> 같은 예전 잡지들에 '정답은 164쪽에'라는 안내문과 함께 실려있던 짤막한 퀴즈를 푸는 것 같이 가볍고 부담없는 짧은 추리 에피소드들도 별로 진부하지 않고 재밌다. 굉장히 짧은 분량 안에 필요한 복선은 다 깔아놓는 정통트릭소설로서의 능력치도 높이 사줄만 하고.
요컨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라면 이 정도로 까놓고 가벼우면 좋겠다. 괜한 폼을 잡으면서도 하나같이 허세에 치우쳐 있고, 절실하지 않은 공허한 질문, 무게를 잡기 위한 질문만 떡하니 던져놓은 채 수습을 못하는 짝퉁 사회파 미스터리는 정말 진심으로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