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계절
<64>에서 시종일관 속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간으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듯했던 후지와타리 신지가 <그늘의 계절> 연작들의 중심인물이다. 그중 하나의 사건은 후지와타리 본인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기까지 하다.
나로선 <64>를 먼저 읽고 작가의 전작을 찾아본 경로였기 때문에 뒤늦은 놀라움이었지만, 만약 <그늘의 계절>을 읽은 사람이라면 <64>에서 후지와타리에게 후카미만큼의 석연찮음, 의혹,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왜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드라마의 변수 역할을, 전작의 주인공에게 맡겨버린 것인지?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의 고유한 테마가 바로 '경찰'이라는 직업인들의 생활과 그 내면인 것 같다. 오히려 <64>는 유괴사건과 그와 관련된 활극이 곁들여지면서 조금 시야가 확장된 편이고, <그늘의 계절>은 철저하게 경찰들 내부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출세욕, 명예욕, 이기심, 허세, 그것이 경찰의 논리로 배치되고 경찰의 논리로 풀어진다. 독특한 공간과 논리 때문에 어찌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과 해결과정이 독특한 색깔을 입게 된다.
하지만 나로선 <64>의 특수한 매력이 전작을 통해 오히려 희석되는 느낌이었고, <64>에서부터 이미 한켠에 조금 거슬리던 부분... 조직과 직분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 같은 것... 이런 게 더욱 강화되어서 그닥. 오히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64>가 좀 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뭔가 사상이 굉장히 올드하다. 구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