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R.P.G

박쥐 2012. 6. 14. 16:51







나비 ㅡ사이조 야소

이윽고 지옥에 내려갈 때 / 그곳에서 기다릴 부모와 / 친구에게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랴.

아마도 나는 호주머니에서 / 창백하게, 부서진 / 나비의 잔해를 꺼내리라. / 그리하여 건네면서 말하리라.

일생을 / 아이처럼, 쓸쓸하게 / 이것을 쫓았노라고.

— 미야베 미유키, “R.P.G” 끝부분에서 인용한 시.


가족관계 속에서 싹튼 어둠, 범죄에 대한 이야기라면 “낙원”이 떠오른다. 별 기대 없이 읽은 책이었는데 낙원보다 훨씬 좋았다. 아니, 그런 비교도 필요없이 좋았다. 취조실에서의 심문을 통해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구성도 신선하고, 미미 여사는 추리소설의 규칙을 위반하는 속임수가 있었다고 미안해했지만, 그것도 그닥 거슬리지 않았다. 매직미러의 안과 밖, 지켜보는 시선이 이중 삼중으로 겹치지만 그 시선은 게임을 벌이는 차가운 긴장감보다는 미미 여사다운 안타까움과 차라리 수행과 같은 진실의 추구로 다가오기 때문일 듯.

모방범의 형사와 크로스 파이어의 형사가 펼치는 콤비 플레이는, 꼭 전작의 주인공을 다시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에선 갸우뚱하지만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어쨌든, 간만에 모방범과 크로스 파이어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