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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박쥐 2012. 2. 2. 18:12


오늘만 한 일곱 권 정도의 두꺼운 사진집을 죽 훑어봤다. 구한말부터 해방 전까지. 왕가부터 유명한 정치가들, 의병과 독립군, 농부와 상인들, 일본인들, 서양인들, 중국인들. 점잔빼고 앉은 기념사진들부터 장터 풍경, 전투장면과 끔찍한 처형장면, 가난한 농민들과 해맑은 아이들까지.

이렇게 많은 사진을 이렇게 집약적으로 다양하게 한꺼번에 접한 게, 처음인 것 같다. 이미 본 사진, 유명한 사진도 많았지만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았다. 이리저리 뒤엉켜 지금 기분이 참 이상하다. 아주 비감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감동적이기도 하고, 서럽고 화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모든 게 합쳐져 굉장히 피곤하다.

무슨 말이 안 나오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에 던져졌다가 빨래처럼 쥐어짜져 다시 끄집어내진 기분이다. 수많은 얼굴들, 표정, 눈빛들이 휘몰아친다. 원한 적 없는 시대에 원한 적 없는 출생... 각자의 삶과 죽음. 순식간에 개개인들의 삶으로 소환된 역사가 오히려 더 무겁게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