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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

박쥐 2009. 10. 9. 11:25






하지만 에나미도 알지 못했다. 고사쿠가 자기 몸에 절망하며 얼마나 번민하는지 남들이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번민할 뿐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두뇌에 어느 정도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깃털처럼 미덥지 못한 버팀목이기는 해도 유일하다면 유일한 희망이었다. 자기가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치더라도 두고 봐라, 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때로는 일삼아 과장되게 바보 같은 몸짓을 했다. 그런 몸짓을 흉내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자신의 진짜 몸조차 흉내 같은 것이라고 착각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자신을 위로했다. 남들이 웃어도 태연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가 먼저 웃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제 몸뚱이를 짐짓 남들 앞에 까발리는 것 같아도 자기처럼 팔로 감싸 안듯 꽁꽁 가리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ㅡ 마쓰모토 세이초, 어느 <고쿠라일기>전



익스플로러를 새로 깔면서 멍하니 앉아 있느니 소설책이라도 보자 싶어 꺼내들었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上>

"번민할 뿐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라는 표현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무심코 읽어 내려가다가 흠칫 놀랐다. 한 호흡으로 단숨에 읽어내리게 되지는 않지만 날카롭고 무거운 문장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추천자의 말이 이런 뜻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