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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대한 두려움
박쥐
2009. 1. 22. 11:41
사건 당일 국무총리는 "니들도 앞으로 불법 저지르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더니, 진상조사를 맡은 검사는 하루만에 "지들이 인화물질 껴안고 있었으니 죽겠다는 거였지"란다. 경멸하다가, 혐오하다가, 진심으로 그들이 두려워진다. 우리가 그들에게 쥐어준 그 무기 때문에 많은 비참한 일들이 생겨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무기로 그들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발밑을 내려다보며, 내가 선 자리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주 본능적으로 짐승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반사작용이었다. 다음 순간, 이 정도였던가 하고 어이가 없어졌다. 나도, 나를 이렇게 만든 그들도, 어이가 없다.
두려움은 슬픔을 먹어버린다. 두려움이 커지면 슬픔도 분노도 부끄러움도 자리를 잃을 것이다. 내가 '사람'이라는 몇 안 되는 증거들이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진심으로 이 시대가 무섭다. 내 무서움이 무섭다.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