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앵꼬?
박쥐
2008. 11. 12. 16:35
그 이전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지난 7월부터 12월까지 책을 6권 만들게 된다. 그중에는 조판만 한 것도 있었고, 조판해서 외주 냈다가 3교 보고 낸 책도 있었고, 교정만 본 책도 있고, 교정+조판하는 책도 있고, 진행+교정한 잡지가 두 권...... 어쨌든 11월, 12월 마감을 차질없이 진행한다면 하반기 매달 한 권씩 밀어낸 셈이 된다. 이런 산업역군을 보았나.
불경기, 그중에서도 최악의 불경기인 출판계에서 가뜩이나 독자도 제한된 학술책들을 가지고 매달 한 권씩 밀어내는 이 상황 자체도 경이롭고 그걸 실제로 하고 있는 이 강행군의 나날 역시 경이롭다. 이 정도면 앵꼬난 것 같다는 투덜거림도 구석방 혼잣말 정도라면 그리 엄살은 아니겠지.
그 책 한권 한권들에 자꾸만 '어쩌라고' 식의 변명이 붙는 것은 분명 좋은 상황이 아닌데, "그에게는 필생의 땀을 담은 한 권의 책이 내겐 오직 이달치 마감일 뿐"인 게 무섭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 와중에도 난 야구에 열광했고 미야베 미유키와 온다 리쿠, 애거서 크리스티 등을 끼고 살았다. 자전거를 배우고, TV는 좀 덜 봤구나. 하여튼 사람은 어떻게든 숨쉴 구멍을 만들어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다만 스스로에게 많이 너그러워져 밀어내고 또 밀어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생명의 신비?
어서 빨리 2008년이 지나가면 좋겠다. 그래봤자 올해 하반기 나의 강행군은 유의미한 변화로 열매맺기보다는 그저 '노예인증'일 뿐인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될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2008년이 시작될 무렵보다는 조금 더 유능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엊그제 끝난 2008년의 야구 대신 빨리 2009년의 야구를 보고 싶기도 하고.
빼빼로 데이에는 여자애가 남자애한테 선물하는 거였는지,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선물하는 거였는지. 분명 어느 시점까지는 알고 있었을 텐데 어젯밤 퇴근길에 커다란 빼빼로 뭉치를 들고 집에 가는 애들을 보면서 한참 생각해도 영 모르겠었다. 퇴화와 진화가 엇갈리는 2008년 하반기가 슬슬 '연말'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