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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8 자전거 배우기 #6

박쥐 2008. 11. 10. 11:53




슬럼프. 혹은 시련기.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3분 정도 지각해서 서둘러 찾아간 집합장소. 다들 자기 연습용 자전거를 골라놓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에 페달이 헛도는 느낌 때문에 타기 힘들었던 모델의 자전거만 주인 없이 세워져 있었다. 슬쩍 못본척 돌아서 창고로 들어가 타고 싶은 자전거를 골라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끌고 나왔다.

그런데 초급반 할머니 선생님이 출석을 체크하시더니 급히 중급반 선생을 찾으며 "저 선생님 따라가. 할 수 있어!!" 하며 정신없이 재촉. 결국 내가 골라낸 예쁜 자전거를 그냥 버려두고 엉겁결에 중급반 선생의 뒤꽁지를 따라 기어 달린 낯선 자전거를 끌고 주차장을 나섰다. 둔치에서 출발해서 올림픽공원쪽으로 가면서 오르막길에서 기어 조작법을 가르쳐준다나.

그런데 이미 다들 어느 정도 기어 사용법을 익힌 중급자들 틈에 홀로 끼어든 초급반 월반자를, 중급반 선생님은 제대로 취급해주지 않았다. 주차장을 벗어나 둔치의 자전거 연습장까지 가려면 길을 하나 건너 차길도 지나가야 한다. 제대로 눈도 맞추지 않고 "따라오세요" 한마디 냉정하게 남긴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앞질러 나가고 나니 마음만 급해 어정쩡하게 차로 위에서 자전거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안장은 높지요, 페달 한번 돌리니 초급자용 자전거보다 훨씬 빠르게 쑥-하고 앞으로 나간다. 균형이 잡히지 않아 비틀비틀하면서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는 비록 둔치 입구이긴 하지만 엄연히 차가 다니는 도로이고, 나는 당황해서 브레이크도 잡지 않은 채 자전거에 올라타 있다는 사실. 어처구니 없게도.

비틀비틀거리던 자전거가 곧 중앙선을 넘어 반대쪽 가드레일-_-로 처박히며 넘어졌고, 그 앞으로 자동차 한 대가 급정거했다. 말이 급정거지, 내가 비틀거리고 있는 모습을 저쪽에서부터 보고 있었던지 거의 사람 걷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던 신중한 자동차여서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었다. 원망스럽게도 중급반 선생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앞질러 집결지로 가 있었다. 온몸이 쑤시고 마음은 덜덜 떨리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 거기서부터는 그냥 자전거를 끌고 갔다. 집결지에 도착하니 냉정한 중급반 선생의 한마디. "자신 없으면 따라오지 마시구요." "네! 안 따라갈께요!"

그렇게 해서 기어 달린 자전거로 둔치 연습코스에서 그날치 강습을 시작했는데, 11월에 새로 수강신청한 초급반에 매달려야 하는 초급반 할머니 선생님은 나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도, 가르칠 여유도 없었던 거다. 왜 안 따라갔냐며 혀를 차시던 할머니 선생님의 코스를 돌라는 지시. 10월 수강생들은 나 빼고는 지각생 한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들 2달이 아닌 1달코스로 오해했던 건지, 아니면 코스에서나마 어느 정도 바퀴를 굴릴 수 있게 되어 나오지 않았던 건지. 여튼 외로운 질주 시작.

처음부터 호되게 넘어지고 깜짝 놀라 위축된 마음에, 손에 익지 않은 자전거에, 거기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형비행기 날리는 무슨 행사가 그곳에서 벌어지던 참이었다. 50명은 되보이는 초딩부터 고딩까지의 아이들이 저마다 모형비행기, 연, 기타등등 날것들을 들고 나와 이쪽 저쪽 잔디에서 날리면서 시도 때도 없이 연습코스에 뛰어들고, 무리지어 횡단하고, 여유롭게 거닐었다. 온갖 장애물들을 능숙하게 피해 자전거를 몰기엔 나는 여전히 너무 초보.

인간들은 왜 좌우를 살피지 않은 채
자꾸만 도로에 뛰어드는 거야!!!


자전거도 탈것이다 보니, 곧장 '탈것의 시점'에서 인간을 적대하게 되는 얍실한 심뽀를 스스로 비웃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대인 충돌사고 두 차례, 충돌사고 직전까지 가는 위기 두 차례, 심지어 저공비행중인 모형비행기에 부딪히는 사고까지. 거기다 급브레이크 잡다 넘어지고, 자전거 올라타다 넘어지고, 하여튼 첨부터 끝까지 시련의 연속이다보니 여태까지 행복하기만 했던 자전거 강습 시간은 어디로 가고 귓전의 바람조차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끝나는 시간만 학수고대.

강습이 끝나고, 서러운 마음을 어딘가에 토로하고 싶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봤지만, 토요일 오후라 그랬는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쓸쓸...... 결국 집에 와서 보니 여기저기 멍든 곳 투성이고, 그렇지 않아도 심해지고 있던 감기기운이 바짝 올라와 주말 내내 자리보전하고 누워 끙끙 앓았다. 할머니 선생님, 다음 주엔 꼭 나를 중급반에 보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강습 시간 내내 나를 보기만 하면 "다음 주엔 꼭 올림픽공원 가는 거야!" 이 말을 백 번쯤 하신 것 같은데, 걱정이 된다. 다음 주에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처음 겪는 슬럼프. 혹은 시련.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목하 고민중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