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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이
박쥐
2004. 8. 22. 00:30
몇 살 때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지금은 세월의 때가 묻어 저모양 저꼴이지만, 언젠가의 내 생일에 엄마가 데리고 온 윤진이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름을 뭘로 짓겠냐며 엄마와 언니가 나를 둘러싸고 앉았고...
"내 동생이니까 무조건 '윤짜 돌림'으로 지을 거야!" 말해 놓곤 머리를 싸맨 나를 놀리기 위해 언니랑 엄마는 "그럼 윤짜라고 부르자~" 하면서 깔깔댔다.
윤짜 아냐! 윤짜 아니란 말이야!ㅠ.ㅠ
거의 울먹울먹하던 내가 불쌍했는지... 언니가 작명을 도와줬다. 그래서 지은 이름, 정윤진. 그땐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함께 지내면서 윤진이 참 많이 다쳤다.
펠트천으로 붙여 놓은 눈동자가 떨어져 나가서 왼쪽눈 실명.
분필로 어설프게 하얀 눈동자를 표시했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이리저리 뺏고 뺏기며 놀다가 오른팔 절단.
나름 비슷한 색 찾는다고 연분홍 리본을 대고 어설픈 바느질 봉합.
어느날 코가 떨어져 나감.
이것도 나름 비슷한 색 찾아서 분홍색 티슈를 뭉쳐 강력접착제로 붙임.
얼굴엔 때가 꼬질꼬질하고, 머리 묶었던 고무줄은 삭아서 사라져 버렸고, 입술선을 그린 빨간 자수실도 군데군데 사라졌고, 언제인가부터 더 이상의 수술도, 미용도 해 주지 않지만...
문득 베란다에 나갔다가, 책과 씨디들이 쌓여있는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사진 한 장 찍어 주까, 물었더니 맘대로 하라나.
우리 사이는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억한다.
그녀가 나를 사랑해 주어서 한 시절을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