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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13

박쥐 2004. 3. 14. 02:35



4호선 상계행 막차를 놓쳐 한성대입구까지만 가는 전철을 탔다.

생각해 보니 처음이다.
막차의 종착역에 내려 본 경험.

굉장히 많은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꾸역꾸역 개찰구를 지나 역을 나서는 행렬에 섞였다.

무리는 아주 천천히 움직였고, 한 남자가 핸드폰에 대고 평균 세 어절에 한 번씩 '씨발'을 섞어 가며 강한 강원도 억양으로 친구에게 욕을 해대고 있었다. 미아리 어디에선가 술을 먹고 있는 친구에게, 이미 전철도 끊겼으니 나는 집에 가겠다는 내용.

전철역 입구 버스정류장은 아비규환이다.
이런 늦은 시간에 밤거리를 쏘다닌 적, 지금의 회사 다니기 전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당연하게 택시를 잡아 타던 버릇대로 택시를 탈까 하다가 버스를 기다렸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막차 버스에 몸을 싣기 위해 전쟁 중이었다. 거기서 비껴나는 게 왠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느낌.

상계로, 노원으로, 혹은 의정부까지 기필코 귀가해야 하는 사람들 틈에서, 어쩌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집에 가기 위해 느긋하게 버스를 골라잡는 입장이라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버스를 탔다.

집에 가는 일이 이렇게 진지하고 치열하구나...
술에 취한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제정신의 어른들'을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참, 다들, 피곤하게 산다.